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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화 체험

출처 - 도산서원 웹사이트

도산서원

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퇴계 이황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1570년 퇴계 선생이 작고하자,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퇴계 선생이 사망한 지 4년 후인 1574년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했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해진다.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1561년 건립하여 유생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으로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져 퇴계의 인품을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출처 - 도산서원 웹사이트

옥진각

玉振閣

도산서원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옥진각은 퇴계 이황 선생의 유물전시관이다. 옥진각은 ‘집대성 금성옥진(集大成金聲玉振)’의 줄임말로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소리에 옥소리를 떨친 것이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유물 전시관은 1970년에 보수를 할 때 지은 건물로서 퇴계 이황 선생의 유품인 지리, 베개 등의 실내비품과 매화연 옥서진 등의 문방구, 청려장, 매화등, 투호, 혼천의 등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웹사이트

청량사 / 청량정사 (오산당)

淸凉精舍,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4호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퇴계선생이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고 읊은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봉우리, 그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자리에 자리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퇴계선생이 공부하신 청량정사 (오산당)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량정사는 일명 ‘오산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퇴계 선생의 숙부인 송재 이우가 퇴계선생의 형 온계 이해와 함께 가르치던 곳으로 퇴계 선생은 여기서 학문을 익히며 국문시가인 ‘도산십이곡’을 지었다고 한다.

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퇴계오솔길

안동예던길 / 녀던길

퇴계오솔길은 예던길이라고도 불리, 본래 녀던길이라고 불리던 길이다. ‘녀던’은 ‘가던’, ‘다니던’의 뜻이 담겨 있으며, 퇴계가 지은 <도산십이곡>에도 녀던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길은 퇴계가 숙부(송재 이우)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가면서 처음 걸었던 곳이다. 스스로 ‘청량산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청량산을 사랑했던 퇴계는 그후로도 여러 차례 이 길을 걸어 청량산으로 향했다. 그런 까닭에 ‘퇴계오솔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출처 - 도산서원 웹사이트

용수사

龍壽寺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 있는 용수사는 고려 의종 원년인 1146년에 왕명으로 창건한 의종의 원찰로서 퇴계선생이 12세 때부터 부친과 숙부,형님(온계) 그리고 여러 종반들과 함께 공부 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출처 - 도산서원 웹사이트

국망봉

國望峰

안동 도산 국망봉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의 조부인 이계양(李繼陽)공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벼슬을 사직하고 이곳에 단을 쌓아 북쪽 영월을 향해 30여년 동안 단종의 죽음을 애도 한 곳으로  해발 481m 에 위치해 있다.
안동지역의 유례 등을 기록한 ‘영가지’ 등에는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 1457년(세조 3년) 12월 24일 숨지자 이계양공은 관직에서 물러나 국망봉 정상에 제단을 만들고 30여년간 영월쪽을 바라보고 절을 올리며 애도했다고 돼 있다.
현재 10평 남짓한 국망봉 정상에는 퇴계 선생의 후손들이 세운 국망봉단비(國望峰壇碑)와 자연석으로 만든 국망봉 상징물이 있으며 봉우리 서편에는 국망봉이란 글자를 하나씩 새겨 놓은 세 개의 바위가 있다.

출처 - 서울신문

퇴계묘소

退溪墓所

종택에서 나와 가던 길을 계속 약 1.5㎞ 남짓 가 하계동에 이르면 퇴계의 묘소가 있다. 길 오른쪽에 제법 경사가 가파른 석축계단이 놓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옆으로 근래에 세운 작은 빗돌에는 ‘양진암 구지’(養眞庵舊止)라고 새겨져 있다. 양진암은 퇴계가 46세 때에 지은 것으로 성리학에 전념하던 곳이다. 그 집터의 뒤쪽 산등성이에 퇴계를 모셨다.
묘소 앞에는 간략하게 상석이 있고, 양쪽에 중국 동자머리를 한 석상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동쪽에 놓인 조촐한 비석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글씨와 함께 손수 찬한 간략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국학진흥원

韓國國學進興院

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통하여 국학자료의 과학적인 보존방법을 모색하고 전통문화와 사상에 기초한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유교문화관련 유물을 조사·수집하여 연구, DB구축 등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국학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유교문화전시관과 장판각, 생활관을 건립하여 퇴계선생 관련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2006년 6월에 유교문화박물관을 개관하여 안동의 유교문화 전반을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유교문화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부속기관

한국국학진흥원의 부속기관인 유교문화박물관은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또 이를 토대로 국학자료의 기탁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유교’ 전문박물관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개별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으로부터 기탁받아 소장하고 있는 국학자료들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엄선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인 유교문화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과 풍부한 볼거리를 꾸준히 발굴하여 전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청량산 박물관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지역홍보자료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함으로써 봉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청량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탐방문화를 제공하고자 건립하였다. 청량산은 퇴계 이황의 사상적 모태이자 학문적 기틀이 마련된 곳으로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사상, 또 그 문도들의 청량산을 주제로 한 문헌자료들을 설명패널, 매직비젼, 수집된유물을 통해 재구성해 놓았다.

출처 - 이육사문학관 홈페이지

이육사문학관

이육사는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육사선생의 고향인 도산면 원천리에 2004년 7월 육사 탄신 100주년 맞이하여 이육사문학관이 개관되었다.문학관 내부에는 육사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선생의 시집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문학관 주위에는 청포도 샘과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이육사문학관에서 500미터 정도 거리에는 육사 생가터가 있다. 건물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안동시내 태화동으로 이건 되었고 현재 그 자리에는 청포도시비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