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태실(退溪胎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60호
태실은 1454년 퇴계 조부 이계양 (李繼陽)이 단종 2년(1454년)에 지었습니다.
이계양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 때
진저리 나는 살육의 한양을 떠나 이곳 안동으로 낙향해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후에 퇴계가 1501년 11월에 이 집에서 태어나
조선 성리학의 거두가 되면서 태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입니다. 본채의 중앙에 삼면을
계자난간(鷄子欄干)으로 둘러 누(樓) 형식으로 독특하게 꾸민 곳이
퇴계 태실입니다.
누마루 상부에 ‘시세청명일 14대손 가원’(是歲淸明日 14代孫 家源)이
퇴계 선생의 학덕과 태어난 상징적인 의미를 쓴 중수기가 걸려있습니다.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 사랑과 작은 사랑으로 분리되어 있는
마루 위쪽에 온천정사(溫泉精舍)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