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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정의 인물

퇴계 이황 (退溪 李滉)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성리학의 대가

이황(李滉, 1501~1570)은 '동방의 주자'로 추앙되고 있다. 그는 고려 말 유입된 성리학의 토착화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며,
당대 사회 주도층으로 성장하고 있던 사림세력의 활동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인물이다. 역사상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이황의 생애를 따라

동방의 주자 이황

한국 역사상 많은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가요 가운데 역사상 위대한 인물 1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을 빛낸 인물이 어찌 100명에 그치겠는가 마는, 저 멀리 단군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미술가인 이중섭까지 100명의 인물들을 간략하게 말하고 있는 이 노래를 부르면, 왠지 모르게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자부심이 들게 한다. 이 노래에서 이황은 “주리 이퇴계”라 하여 그가 주장한 성리설의 핵심인 주리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주리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노래를 입으로 흥얼흥얼하면서 퇴계 이황을 위대한 100인의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원한 스승, 퇴계 이황

한국 역사상 많은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가요 가운데 역사상 위대한 인물 1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을 빛낸 인물이 어찌 100명에 그치겠는가 마는, 저 멀리 단군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미술가인 이중섭까지 100명의 인물들을 간략하게 말하고 있는 이 노래를 부르면, 왠지 모르게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자부심이 들게 한다. 이 노래에서 이황은 “주리 이퇴계”라 하여 그가 주장한 성리설의 핵심인 주리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주리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노래를 입으로 흥얼흥얼하면서 퇴계 이황을 위대한 100인의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지식인의 한 유형, 의리 탐구에 주력

조선시대에는 많은 지식인이 활동하였다. 물론 논자에 따라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대략 이 시대 지식인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한 분류는 학문에 침잠해 성현의 도를 추구하는데 주력했던 인물로, 대표적으로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현실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성리학을 학문적 바탕으로 하여 내면 수양의 기초가 되는 심성의 탐구에 주력하였다. 다음으로는 의리의 실천에 주력했던 인물로, 대표적으로는 조식(曺植)과 송시열(宋時烈)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내면의 수양을 전제로 축적된 학문의 실천에 주력했던 인물들이었다.

마지막 부류로, 국가 경영의 경륜을 실천했던 인물들로, 조선 전기에 양성지(梁誠之)를 비롯해 김육(金堉)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실제 국가 경영의 현장에 참여, 경륜의 실천에 주력했던 인물들이다. 다만, 당대 지식인을 반드시 어느 한 부류에 속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앞서 제시한 이이의 경우 의리의 추구에 주력하면서도 실제 국가 경영의 현장에 참여하며 자신의 경륜을 제시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류는 경향성의 파악을 위한 편의적인 것일 뿐이다. 이 같은 3가지 분류에서 이황은 첫 번째에 해당되는 인물로, 철저하게 의리의 탐구에 치중하였으며,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었다.

퇴계학의 완성 과정

경상도 예안 온계리에서 출생한 이황은, 12살이 되던 해에 숙부 이우로부터 [논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학문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그는 [주역]에 한 때 몰입하기도 하였으나,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간 뒤에는 [심경부주]에 심취하였다. [심경부주]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인 진덕수(眞德秀)가 지은 [심경]에 정민정(程敏政)이 주석을 붙인 책으로, 인간의 마음 이해를 위한 성리학자의 필독서였다. [심경부주]에 대해서 당시 대부분 사람이 구두조차 떼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이황은 "문을 닫고 여러 달 연구한 끝에 대강을 이해할 수 있었다"([퇴계선생언행록])고 한다.이후 이황은 홍문관수찬이나 성균관사성 등의 관직을 제수 받기는 하였으나 출사하지 않고 더욱 학문에 침잠, 43살이 되어서는 주자학의 정수인 [주자대전]을 입수하였다. [주자대전]은 주자의 저술인 [근사록]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이 망라된 것으로 주자학의 백미 중에 백미라 하겠다. [주자대전]을 통해 주자의 저술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였던 이황은 이후 성리학 관련 다양한 저술을 내놓은 한편 학문적으로 완숙기였던 59살 때에는 33살의 어린 기대승과 사단(四端: 仁.義.禮.智)과 칠정(七情: .怒.哀.樂.愛.惡.欲)과 관련해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논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황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기대승의 의견을 받아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이황이 이처럼 마음이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관심을 둔 데에는 당대의 철학적 사조에서 영향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면 도덕성 회복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이었다. 당대뿐 아니라 앞 시대 집권세력에 의해서 자행되던 정치 사회적 비리나 폐단을 목격한 상황에서 그가 제시한 해답이라 하겠다.

사림의 시대, 사회운영 원리를 제시

역사학계에서는 16세기 후반 이후의 시기를 사림의 시대라고 하고 있다. 사림이 정치나 사회 등 제 분야에서 주도층으로 등장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황은 바로 이런 사림의 시대에 국가나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논리를 제공한 인물로, 그의 학문적 업적과 함께 주목되는 사실이다. 이황은 먼저 향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예안향약을 제정하였다. 예안향약은 그의 고향인 예안현 농민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유망(流亡)함으로써 향촌사회가 피폐해짐을 목격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제시한 것이었다.

예안향약을 통해서 이황은 농민의 유망을 막아 향촌사회를 안정화시키려고 하는 한편 그가 평생 공부했던 성리학의 사회윤리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불손한 자를 극벌로 다스린다든지, 친척과 화목하지 못한 자를 중벌로 다스린다는 조항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밖에도 그는 다가오는 사림의 시대를 주도할 사림의 육성에 치중하였는데, 이때 주목한 것이 서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원은 1543년(중종 38)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인데, 이 서원의 설립 당시 주된 기능은 고려시대 유학자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인 안향(安珦)의 제향이었다. 그런데 이황은 1560년(명종 5) 풍기군수로 내려갔을 때, 백운동서원에 대해서 중앙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는 한편 서원을 단지 제향하는 공간이 아닌 사림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자기 수양을 하는 공간으로 규정하였다. 초기 서원이 중시했던 제향 기능을 부수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황은 이를 계기로 서원보급운동에 주력하여 상당수의 서원 건립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황의 이런 활동을 통해서 이른바 조선 서원의 전형이 완성되었거니와, 이황은 서원을 통해서 다가오는 시대에 국가 경영이나 사회 운영을 주도할 사림들을 육성하려고 하였다.한편 이황은 말년에 새롭게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바쳤다. [성학십도]는 그림을 통해서 성리학의 정수를 표현한 것으로, 새롭게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군주학인 성학(聖學)을 제시하였다. 선조가 유학에서 성인이라 말해지는 요순(堯舜)처럼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동방의 주자로 추앙

이황의 이상과 같은 학문적 또는 사회적 활동은 비리와 부패로 점철된 시대를 청산하고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림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황의 문인 조호익은 이황을 평하여,

“실로 주자 이후의 제일인자”라고 하였다. 가히 ‘동방의 주자’라 할 만하다.이황의 학문은 당대뿐 아니라 이후 조선 사회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며 확산되면서 이른바 퇴계학파라는 조선조 학파의 큰 맥을 형성하였다. 비록 이후 시기 그의 문인이나 후학들이 정치적으로 당대 주도세력과 정치적 성향을 달리하여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학문은 대부분 논자들이 성리학의 정수로 인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문집이 일본에 유입되어 일본 내 주자학의 주류로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 그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과 대만, 미국, 중국 등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가 탐구하려고 하였던 큰 주제가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대한 것이기에,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글 이근호 /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글쓴이 이근호는 조선후기 정치사와 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대중과 소통하려는 차원에서 [이야기 조선왕조사],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사전] 등을 출간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발행일 2010.07.16
출처 : 네이버 캐스트